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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 박재홍> 매주 일요일 주일 낮 12시 10분만 되면 어김없이 울리는 실로폰 소리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지난 34년간 전 국민을 웃기고 울렸던 전국노래자랑의 국민 MC 송해 선생님, 지난주에 아흔다섯에 세상을 떠나셨죠. 그래서 오늘 송해 선생님을 깊이 추모하고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우리 송해 선생님과 1년 내내 함께 동행하시면서 평전을 쓰신 분을 모셨습니다. 아마도 가장 가까이서 그리고 자세하게 또 깊이 있게 말씀해 줄 수 있는 분인 것 같아요. 단국대학교 영문과 오민석 교수를 모셨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세요.
◆ 오민석> 안녕하세요.
◇ 박재홍> 진 작가님과 김 소장님과 인사 나눠주세요.
◆ 진중권> 안녕하세요.
◇ 박재홍> 저희가 딱딱한 이슈만 다루다가 이 이슈를 다루니까 좋으네요. 벌써 마음이 따뜻해지는데 일단 교수님께서 영문과 교수님이신데 국민 MC의 평전을 어떻게 쓰시게 된 건지 많이 궁금해하실 것 같아요.
◆ 오민석> 그런데 저는 일단 이 프로그램 섭외를 받았을 때 제목이 한판승부잖아요. 제가 오늘 여기서 싸우고 안 그래도 되는 거죠?
◇ 박재홍> 전혀 아니에요.
◆ 김성회> 이 건에 대해서는 그럴 일이 없죠.
◆ 진중권> 제가 송해 선생님 팬이라서.
◆ 오민석> 조금 아까 하신 그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사실 대중문화 연구를 미국이나 영국의 영문과에서는 굉장히 많이 해요. 그래서 보통 주립대 영문과 같은 경우에는 영화 비평까지 합치면 학부 커리큘럼의 한 50% 이상이 사실 대중문화 연구고 그런 추세가 영국은 더 오래됐고 미국도 벌써 한 20~30년 전부터. 왜냐하면 대중문화 영향력이 갈수록 막강해지잖아요. 옛날에는 대중문화 그러면 싸구려 그래서 학문적 연구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지금 대중문화보다 더 막강한 영향을 가진 문화 영역이 없단 말이에요. 예를 들면 셰익스피어보다 BTS가 한 몇만 배 더 영향력이 있잖아요.
◇ 박재홍> 몇 백만 배.
◆ 오민석> 셰익스피어, 햄릿 이런 것보다.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 분석을 해야 되는 것들이고 저는 또 영문과에도 여러 전공이 있는데 비평이론 전공이고 그리고 학교에서 대중문화론 강의를 많이 했고 또 송해 평전 외 밥 딜런에 관한 책고 썼고 정태춘론도 쓰고 해 왔습니다.
◇ 박재홍> 그런 의미에서 국민 MC 송해 선생님 만나서 평전까지 쓰게 됐는데 처음 만나신 게 길바닥 인사동 수도약국을 지나서 만나셨다가.
◆ 진중권> 수도약국이요?
◇ 박재홍> 낙원동 사우나에서 만난 게 두 번째 만남.
◆ 오민석> 지금도 있던데요? 한 20~30년 전 어느 일요일인데 굉장히 한가한 때였어요.
◆ 김성회> 최근이 아니고 20~30년 전.
◆ 오민석> 처음 만난 게 수도약국 골목을 지나는데 저쪽에서 송해 선생님이 오는 거예요. 아무도 없고 제가 지나가고. 그런데 저는 연예인을 본 적이 없어서.
◇ 박재홍> 실제로.
◆ 오민석> 제가 잘 아는 어르신인데 누구인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우리 아버님 친구인가. 아니면 초등학교, 중학교 때 우리 담임 선생님이신가.
◇ 박재홍> 낯이 익어서.
◆ 오민석> 그런데 가면서 아니야, 어쨌든 내가 잘 아는 어르신이니까 무조건 인사를 드려야 돼. 저분은 나를 몰라도.
◇ 박재홍> 반사적으로.
◆ 오민석> 그래서 지나가면서 안녕하세요. 이름은 안 하고 누구인지 모르니까. 안녕하세요 그러고 휙 지나갔는데 한 2m쯤 지나가다 생각하니까 아참, 송해 선생님이다. 그러고서 한 20년이 지나서.
◇ 박재홍> 20년 후에.
◆ 오민석> 낙원동의 한 사우나에서 우연히 만났고 또 그리고서 두 달쯤 지나서 낙원동 길거리 지나가다가 또 만나고.
◇ 박재홍> 낙원동에 주로 이렇게.
◆ 오민석> 제가 그쪽으로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자주 가서 그런가 봐요. 선생님 사무실이 거기에 있는데 제가 그쪽을 어슬렁거리다 보니까 그렇게 자꾸 만남의 우연이 반복돼서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 김성회> 뭐라고 소개를 시작하셨나요?
◆ 오민석> 서로 발가벗고 탈의실에서 저는 너무 반가워서 그냥 앞뒤 안 가리고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거든요. 그리고서 그날 저는 영문학자지만 시인이고 문학평론가예요. 시집이 나왔길래 제가 사인을 해서 전화번호를 적어드리니까 당신도 저한테 사인을 해 주겠다고 그래서 제가 갖고 있던 책에 사인해 주시고 당신 전화번호를 적어주시는데 저는 그분이 진짜 시집을 드렸지만 안 읽으실 줄 알았어요. 그런데 한 3일쯤 지났는데 전화가 왔어요. 왜냐하면 그 시집의 첫 번째 페이지에 전국노래자랑 얘기가 나오고 송해 씨 이런 얘기가 나와요. 저는 전국노래자랑을 옛날부터 즐겨봤는데 어떤 프로그램에서 김춘자인가. 하여튼 이름도 촌스러운 어떤 할머니가 무대 위에 나와서 송해 선생님이 왜 전국노래자랑에 나왔냐 이렇게 물었더니 울먹이면서 자기가 위암 말기인데 평생 소원이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는 거였다. 그리고서 그러십니까, 쾌차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할 거 아니에요. 그럼 무슨 노래를 부르시겠습니까 이랬더니 창부타령을 부르는 거예요. 위암 말기고 다 죽어간다는데. 창부타령은 니나노 닐니리야 이런 거거든요. 저는 그 자체가 굉장히 슬펐어요, 그 풍경 자체가. 그래서 제가 드린 시집의 첫 번째 페이지에 아무런 제 코멘트를 안 하고 그 장면만 그냥 묘사를 했어요. 무슨 김춘자 씨 괄호 열고 65세 나와서 송해 씨가 이렇게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이어서 창부타령을 불렀다. 앞에 다른 얘기가 나오고. 그런데 그분이 그걸 보셨나 봐요. 그러니까 저는 전화번호를 주고받았지만 연락 올 거라고는 상상도 안 했는데 전화가 오셔가지고 오 교수님 보니까 노래자랑 이야기라고 제 얘기를 해 놨던데 소주 한잔 합시다 해가지고 제가 막 흥분해서.
◇ 박재홍> 두 분이서.
◆ 오민석> 그래서 소주 한잔 하고 또 한 잔이 두 잔 되고. 저도 술을 좋아하는데 그분도 막강한 그렇게 해서 친해졌습니다.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이제 친해진 나머지 평전을 이분을 위해 써야겠다고 다짐을 하셨던 거네요.
◆ 오민석> 그렇죠.
◇ 박재홍> 교수님께서 먼저 제안을 하셨던 건가요?
◆ 오민석> 제가 제안을 한 거죠. 보통 자서전 같은 경우에는 연예인들이나 유명 셀러브리티들이 돈을 주고 집필을 부탁하는데 이건 그게 아니고 이거 하면 어떻겠습니까?
◇ 박재홍> 나는 딴따라다 이 책이죠?
◆ 오민석> 네.
◇ 박재홍> 제안을 하시고.
◆ 오민석> 제안을 했더니 송해 선생님 말씀이 아니, 당신 같은 대학 교수가 나 같은 딴따라 얘기를 무슨 가치가 있다고 쓰느냐. 이러길래 제가 만약에 선생님이 미국이나 유럽처럼 대중문화에 대한 뭐라고 그럴까. 분석이나 연구 이런 것들이 굉장히 축적돼 있는 나라에서 태어나서 이 정도 하셨으면 벌써 평전이 열 몇 권이 나왔을 겁니다. 선생님은 살아 있는 박물관입니다. 선생님 얘기를 쓰면 선생님 얘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일제시대 때부터 1927년이면 일제강점기 한복판이잖아요. 한국전쟁 이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사건들인데 선생님 얘기를 쓰면 선생님 개인사뿐만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얘기할 수 있고 또 유랑극단 시절부터 한류까지 그 중심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한국대중문화사를 이렇게 서베이하는 것도 되고 그다음에 한국 방송사 라디오, 흑백, 컬러TV 이렇게 이어지는 이건 굉장히 중요한 기록입니다. 선생님 연예인 후배들을 위해서 기록을 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승낙을 하시더라고요.
◇ 박재홍> 1년 동안 동행하셨다고요.
◆ 오민석> 그래서 제가 알아야 하니까 물론 제 나름대로 알고 있었지만 1년 동안 동행한 게 제가 말씀 드렸어요. 오전에는 인터뷰. 오전에는 제가 궁금한 걸 책을 쓰기 위해 궁금한 걸 물어보고 사무실에서 만나서. 그다음에 점심을 같이 먹은 다음에 선생님 오후에는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지 어떻게 사시는지 관찰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옆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원래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그림자처럼 계속 같이 다니겠습니다. 그래서 저녁 때 댁에 들어가실 때까지 제가 수업이 없는 날은 거의 매일 그리고 방학 때는 거의 매일 그래서 전국노래자랑뿐만 아니라 술자리, 기업은행 광고도 하지 않았어요? 그럼 그 관계자들 미팅 장소, 가요무대 녹화 등등등 그냥 자리마다 가서 옆에서 선생님 하시는 걸 이렇게 보면서 메모하고 그랬죠.
◇ 박재홍> 굉장히 큰 작업이었네요.
◆ 오민석> 같이 노래도 부르고 놀기도 하고.
◆ 진중권> 귀중한 작업이네요.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어쩌면 못 나왔을 수도 있는.
◆ 오민석> 그렇죠.
◇ 박재홍> 교수님께서는 맨날 작업하면서 자기소개도 항상 하셨겠네요.
◆ 오민석> 송해 선생님이 참 겸손하신 게 이 사람이 단국대 교수인데 내 평전을 쓰려고 그래. 이 말을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그런 얘기를 한 번도 안 하고 뭐라고 했냐면 이 사람이 영문과 교수인데 우리 세계에 관심이 많아, 연예계에. 우리 세계에 관심이 많아서 지금 공부하러 이렇게 맨날 날 쫓아다녀 이런 식으로. 한 번도 자기 자랑식으로.
◇ 박재홍> 감동이네요.
◆ 오민석> 왜냐하면 연예인 중에 자서전을 쓴 분들은 여럿 있어요. 제가 볼 때 뭐죠? 잘 생각이 안 나는데 전인권 또 록 신중현 이런 분들 자서전이 나와 있잖아요. 그런데 제3자가 평전을 쓴 연예인들은 제가 볼 때는 거의 없거든요. 그럼 나름 그분으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고 자랑할 만도 한데 세상에 그 얘기를 책이 나올 때까지도 한 번도 안 하시더라고요.
◇ 박재홍> 그렇군요. 그래서 이제 송해 선생님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직접 보셨는데 저희도 무대 위에서 아주 소탈한 모습만 기억하지 않습니까? 고인의 평소 모습까지 보셨는데 어떤 분이셨나요?
◆ 오민석> 실제로 두 가지죠. 무대 위와 아래가 똑같은 건 다정다감한 것, 정이 그렇게 많아요. 그리고 사람을 하나하나 디테일까지 배려하는 것. 그것은 실제로 무대 밖에서는 더 깊고 심하시고요.
◇ 박재홍> 무대 밖에서.
◆ 오민석> 더 심하세요.
◇ 박재홍> 어떻게 배려하셨어요?
◆ 오민석> 제가 다른 프로그램에서 말씀드린 적 있는데 며칠 전에. 제가 처음 만나서 이렇게 관계가 서먹서먹할 때인데 같이 백반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제가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뜨면 반찬을 이렇게 올려줘요.
◇ 박재홍> 맞아요, 반찬 올려주셨다고.
◆ 오민석> 당신 입에 댄 젓가락으로 반찬을 떠서 제 숟가락 위에 놔주시는데 저는 그 다정함에 완전히 무장해제 돼서 어떻게 하지를 못하겠더라고요. 그거는 그러니까 무대 위나 아래에서나 인자하고 푸근한 건 똑같은 거고 무대 위하고 아래가 약간 다른 점은 무대 밖에서는 진짜 카리스마 장난 아니에요.
◇ 박재홍> 무대 밖에서의 카리스마.
◆ 오민석> 술집이 됐든 뭐가 됐든 다 그냥 꼼짝 못하는 분위기? 잘해 주는데도.
◇ 박재홍> 그렇군요.
◆ 오민석> 키는 작으신데 하여튼 그런 무게감이나 비중들이 자리마다 정말 엄청 크셨어요.
◇ 박재홍> 방송 그렇게 오래 하시면서 수백 명의 PD를 거치셨는데 우리 송해 선생님이 한 번도 안 싸운 PD가 없었다고.
◆ 오민석> 저도 그런 말씀을 들었고 싸우는 장면을 목격한 적도 있어요.
◆ 오민석> 싸우는 장면을? 전국노래자랑 녹화하시면서?
◆ 오민석> 일단 싸웠다는 건 소리 지르면서 싸웠다 그런 것보다 그분이 무대 완결성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강하세요.
◇ 박재홍> 프로의식이 강해서.
◆ 오민석> 이게 완벽해야 돼요, 무대가. 당신 MC만 잘 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전체적으로 완벽해야 하는데 가령 녹화를 하다 보면 선생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초대가수가 마음에 안 든다든가 혹은 출연자들 중에 올라오지 말았어야 될, 선발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 있다든가 하여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잖아요. 조명이 어떻다든가 그런 걸 하나도 안 넘기시는 거예요.
◇ 박재홍> 꼭 말씀하시는군요.
◆ 오민석> 그런데 제가 봤을 때 나중에 지금은 유명해지셨으니까 마치 송해 선생님이 갑 같지만 방송 시스템에서는 PD들이 갑이고 우리들이 을이잖아요.
◇ 박재홍> 송해 선생님이니까 가능한 싸움.
◆ 오민석> 그런데 선생님이 을이던 시절에도 처음에도 그런 식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두려워하지 않고 무대의 완결성을 위해서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거고 한 번은 실제로 본 장면은 하여튼 굉장히 화가 나셨어요. 그래서 녹화 전날 간단한 생맥주집에서 악단원들, 관계자들, PD들 맥주를 마시는데 제 앞자리에 저는 항상 송해 선생님의 앞자리나 옆자리에서 선생님을 자세히 봤는데 화가 나셔서 말씀을 하시는데 짐승의 이름들이 이렇게 나오는데.
◇ 박재홍> 도그.
◆ 오민석> 그게 세상에 어떻게 저렇게 쫄깃쫄깃하게.
◇ 박재홍> 차지게.
◆ 오민석> 그리고 되게 살벌하니까 사람들이 완전히 쫄아서 잘못을 안 한 사람도 전체가 쫄아서 벌벌 기는데 재미있는 건 화가 나면 화가 나서 쭉 가는 게 아니고 중간중간 개그성 멘트를 날려요. 그러니까 다 쫄았다가 낄낄거리다가 이래요. 그래서 저는 처음에 굉장히 긴장했는데 이건 굉장히 중요한 장면이다. 일반인들이 못 보는 장면이기 때문에 그 멘트 하나하나까지 기억해 놨다가 평전 쓸 때 써야 한다. 그래서 제가 보이스레코더로 녹음을 해야 되는데 왜냐하면 저도 많이 그날 취해서 그다음 날 생각하면 잊어버리잖아요. 그런데 보이스레코더를 놓을까 말까 굉장히 망설였어요, 제 바로 앞에 계신데. 여기다 딱 놓으면 어떻게 보면 놓치고 싶지 않은 이 장면을 녹음하는 것이 싫으시니까 만약에 저한테 소리라도 지르면 오 교수 지금 뭐하는 건가. 지금 이걸 할 때야 이런다든가. 그런데 제가 아니야, 이건. 책이 중요해. 어떻게 되든 말든 녹음을 하자. 그래서 제가 보시는데 딱 놨어요. 딱 켜서 딱 놨는데 저는 이분 보고 또 놀란 게 이게 뭔지 아세요. 전혀 의식 안 해. 하나도 안 봐, 신경도 안 쓰세요. 쫀 건 접니다. 그러다가 제가 안주를 먹는데 아니, 하필이면 닭요리가 딱 있는데 안주가 하나 떨어져서 선생님한테 날아간 거예요, 이 심각한 분위기에. 그래서 나는 왜 거기로 날아가지. 덩어리가 커서 딱 보셨어요. 얘기하다 딱 멈추시더니 오 교수님 저한테 잘하셔야 됩니다. 그런 게 기억이 나요. 그런데 그런 어떻게 보면 심각한 자리에서도 항상 유머를 잃지 않으시고 그다음에 짐승의 용어를 말할 때도 그 당사자 얼굴을 안 쳐다봐요. 제가 얼굴 쳐다보고 짐승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얘기를 할 때는 얼굴을 쳐다보는데 그걸 할 때는 이렇게 땅바닥을.
◇ 박재홍> 사색하시면서.
◆ 오민석> 그러니까 예의가 있으세요.
◇ 박재홍> 선생님, 그런데 뭡니까? 꼭 수많은 전국노래자랑 공연하러 가실 때 그 지역에 가시면 항상 반드시 들르는 장소가 있다고 하던데.
◆ 오민석> 목욕탕을 꼭 가셨죠.
◇ 박재홍> 그 지역 목욕탕?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서 가셨나요?
◆ 오민석> 일단 그분은 특별한 녹화 일정이 없으면 오후 4시면 무조건 목욕탕을 가세요, 보통 사무실에서도. 그래서 가서 이제 온탕도 아니고 열탕? 열탕에서 남들은 숨이 가빠서 견디지. 제가 옆에서 같이 해 봤거든요. 제가 훨씬 젊은데 저는 못 견디겠어요, 막. 그 이상을 버티시고 나오셨다가 또 냉탕을 가시고. 냉탕에 들어가면 저는 조금 있으면 으슬으슬 떨리는데 항상 뭔가 오버야. 그게 습관이시기도 한데 지역 노래자랑에 가서 더 하시는 이유는 지역 주민들하고 허심탄회 이야기를 해 봐야 당신이 무대에 섰을 때 더 이렇게 가깝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 박재홍> 그 지역의 온도를 알 수 있기 때문에.
◆ 오민석> 그래서 제가 목욕탕도 다 같이 가봤는데 가서도 무슨 얘기를 나누나, 어떡하나. 사람들이 막 오죠. 어, 송해 아니야, 이러면서 사람들이. 별 얘기 다 하고 껄껄껄 웃으시면서.
◆ 김성회>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걸 그렇게 즐기셨나 보네요, 송해 선생님이.
◆ 오민석> 아주 즐기시고 친절하시고.
◇ 박재홍> 함께한 전국노래자랑 악단 단원들이 있잖아요. 저희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분들도 연주하시는 분들 기억에 많이 나는데 단원들을 위해서도 많이 힘써주셨다고 하던데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을까요?
◆ 오민석> 제가 취재 중에 세월호 때였어요. 몇 백 명이 졸지에 물에 수장된 심각한 사태에 전국노래자랑 하면서 낄낄대고 웃고 이게 안 되니까 KBS에서 한 두세 달 됐을 거예요. 일시적으로 전국노래자랑 방영 자체를 중단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녹화를 안 하니까 악단의 멤버들이 개런티를 못 받잖아요.
◇ 박재홍> 출연료.
◆ 오민석> 출연료를 못 받으니까 생활이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뭐라고 그럴까, 행정의 위계가 있으면 아래 단위에서 얘기를 해도 이게 잘 안 풀리니까 이분이 올라가서 그냥 담판 지어서. 이 사람들 먹고살아야 되는 거 아니냐. 그동안 노래자랑에 이바지한 게 얼마인데 배려를 해 줘라. 돈이 얼마나 된다고 그러냐. 담판을 지어서 밀린 출연료 그걸 다 받게 하시고 그런 걸 제가 보고 아무나 방송계에서 방송 PD, 연예인 이런 관계에서 아무나 갑이 되는 게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분이십니다.
◇ 박재홍> 이상벽 씨 인터뷰를 들어보면 송해 선생님이 그렇게 방송을 30년, 40년 하셨지만 뭐랄까요. 대본도 항상 열심히 보시고 방송 준비에 최선을 다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옆에서 보면 어떻게 방송 준비하시던가요?
◆ 오민석> 그 전날부터 대본을 열심히 보시고 그리고 워낙 기억력이 좋으세요. 기억력은 진짜 뭐라고 그럴까요. 흘러간 옛 노래라는 그분은 싫어하시는데 어쨌든 트로트 1세대 노래들 백 몇 십 곡 가사를 다 암기하고 계시고 그러시고 그다음에 큐카드가 없는 건 아니에요. 큐카드 안 보고 한다고 그러는데 무대에서 큐카드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죠.
◇ 박재홍> 무대에서는.
◆ 오민석> 대사, 대본이 없지는 않잖아요. 있어요. 그전에 다 보시고 일단 무대 딱 들어가면 아무것도 없이 그냥 다 기억을 하고 하시고 그리고 만약에 우리도 그러잖아요. 가령 굉장히 유명한 가수가 나왔는데 갑자기 이름이 생각이 안 나요, 그럴 때도 있잖아요. 그때 임기웅변으로 넘어가는 것도 대단하세요.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미자 선생님인가 이름을 까먹을 리가 없잖아요. 이미자 선생님이 나오십니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생각이 안 나잖아요. 그러면 순간적으로 여러분, 누구신지 아시죠?
◇ 박재홍> 가수들이 노래 까먹을 때.
◆ 오민석> 워낙 기억력도 좋으시지만 큐카드를 안 보고 현장에서 녹화를 바로 하실 때 그 순간적인 대응 능력 같은 것도 그러니까 이 센스와 머리가 굉장히 좋으시고 기억력도 좋으시고 그런 것 같아요. 그런 걸 옆에서 계속 지켜보면 아주 진짜 놀라요.
◇ 박재홍> 본인이 국민 MC로 불리는 거 아셨잖아요. 본인이 그 호칭에 대해서 우리 송해 선생님은 어떻게?
◆ 오민석> 좋아하시죠, 만족해하시고. 그리고 항상 이렇게 프로그램을 이렇게 그 프로그램의 특정 수요층만 보는 프로그램이라고 생각 안 하신 것 같아요. 우리가 선생님을 국민 MC라고 부르는 것처럼 선생님도 전국노래자랑을 국가 단위의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통 합하는 그런 개념으로 이 프로를 대하신 것 같습니다.
◇ 박재홍> 송해 선생님이 돌아가시면서 선생님의 어록도 굉장히 많이 화제가 되고 있죠. 교수님도 옆에서 평전 쓰시면서 어록도 많이 정리를 하시고 많이 들으셨을 것 같은데 혹시 기억에 남으시거나 이 시간에 청취자들과 나누고 싶은 어록이 있으시다면.
◆ 오민석> 워낙 많습니다마는 저는 언론에 잘 안 나왔지만 공평하게 이런 말을 자주 하세요.
◇ 박재홍> 공평하게.
◆ 오민석> 공평하게 대등하게. 그게 뭐냐 하면 가령 전국노래자랑 녹화할 때 그 지역의 행정가들, 지역 국회의원이라든가 지자체장들에게 절대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다, 똑같이. 그리고 자리 없으면 중간에 앉으라고 그러고 공평해야 한다. 그리고 이 무대의 주인은 행정가들이 아니라 국민들이고 시민들이다, 그 공평하게가 있고 또 하나는 공평하게는 술자리에서. 똑같이 마셔야 한다.
◇ 박재홍> 똑같이 마셔야 되는군요.
◆ 오민석> 예를 들어서 제가 진중권 선생님과 우리가 만나기로 했는데,우리 넷이서. 그런데 진중권 선생님이 1시간 늦게 왔어요. 우리 셋이 한 병씩 먹었어. 그런데 중간에 왔잖아요. 그럼 빨리 한 병 마셔야 돼요.
◇ 박재홍> 한 병 마시고 시작해야 되는군요.
◆ 오민석> 그래서 공평하다 이거야.
◆ 진중권> 늦으면 절대 안 되겠다.
◆ 오민석>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그분하고 술자리를 누구가 즐기기를 원하고 일반 대중들은 선망했죠. 그런데 아무나 못하는 거예요. 그분과 즐기려면 그분만큼 마실 수 있어야 희요.
◇ 박재홍> 조건은 그거군요. 공평하게 마셔야 된다.
◆ 오민석> 그 공평하게가 두 가지잖아요. 평등정신 그게 좋았고 충청도 어느 지역에서 녹화를 하는데 리허설을 하는데 공무원들이 리허설 할 때 관객들 앉는 플라스틱 의자 있잖아요. 그걸 들고 앞으로 오니까 녹화를 하시다가 국민들이 들으면 안 되니까 이걸 내리시고 뭐하는 거예요, 이렇게 물어보니까 여기 군수님 앉아야 되고 구의원 앉아야 되고 그랬더니 그냥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당장 치우라고,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당신들이 제일 앞자리에 그렇게 앉아 있으면 관객 국민들이 다 긴장한다. 그러니까 앉고 싶으면 저 뒤에 아무데나 퍼져 앉고 특석이라는 건 없다. 저는 그 위계를 담번에 무너뜨리는 게 아주 좋았어요.
◇ 박재홍> 공평하게. 송해 선생님이시니까 하실 수 있는 말씀이셨습니다. 너무 시간이 아쉽네요, 거의 보내드려야 될 시간이 됐는데.
◆ 진중권> 그러게 말입니다. 1시간 정도는 해야지.
◇ 박재홍> 너무 아쉽습니다.
◆ 오민석> 저도 한판승부라서 마음이 편합니다.
◇ 박재홍> 마지막으로 우리 송해 선생님 국민들이 어떤 분으로 기억해 주면 좋겠다. 짧게 한 20초 정도 말씀해 주시면요.
◆ 오민석> 어떤 분으로 기억하기를 원하냐 말을 안 해도 그 모습 그대로 기억을 모든 국민이 하실 거라고 생각하고요. 언제 다시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진짜 MC가 또 나올 수 있을까.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 박재홍> 송해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관객 한 단 한 명이 있어도 1만 명이 있다는 자세로 대해야 한다는 말씀을 남겨주셨는데 저희도 이렇게 방송하겠습니다. 오늘 말씀 주신 분은 단국대 영문과의 오민석 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오민석> 고맙습니다.
◇ 박재홍> 저도 내일 뵙죠. 한판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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